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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춘향전』을 볼 수 없는 이유_이랍

작성자
레드홀릭스
작성일
2014-03-27 17:34
조회
757

영화 <춘향뎐> 중

요즘은 『춘향전』을 볼 수 없는 이유

지금에야 『춘향전』이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그것이 널리 읽히던 조선시대의 이본들을 살펴보면 사실 그 이야기가 마냥 ‘순수'하고 ‘예쁜’ 사랑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치마를 입은 채로 그네를 타는 춘향의 개방적인 자태에 반하여 몽룡이 번호를 따간 이후로, 멋들어진 붓글씨로 휘갈겨 쓴 메시지 몇 통을 주고받은 뒤(아마 이모티콘이랄 것도 그리지 않았을까. 난이나 매화 같은 것) 두 사람은 무려 춘향의 집에서 함께 술자리를 갖게 된다. 첫날부터 둘 사이의 분위기는 심상치가 않고, 그날 이래로 술자리와 그 이후 이어지는 둘의 뜨거운 애정행각은 몽룡이 과거를 보러 떠나는 날까지 이어진다.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의 방식들, 체위며 표정이며 소리며 하는 것들은 여러 판본에, 이건 뭐 야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사실은 이야기에서 묘사된 둘의 나이가 십대 초중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회의감에 빠진 채로 내 십대 초중반 시절을 돌아봐야만 했다. 나는 그때 뭘 했더라? 어디서 뭘 보고 온 건지 쉬는 시간마다, 남자애들끼리 놀러 다닐 때마다 ‘보지물 빨고 싶다, 보지물 빨고 싶어!’ 라는 말을 내뱉은 친구 덕분에 ‘그런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안 게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였을 것이다.(그 친구의 이름은 정다운이다. 잘 지내니?) 뭣도 모르고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오줌이랑 정액이 뭐가 달라요?’라는 질문을 던졌던 건 아마 그 이후였을 거고, 침대에 혼자 누워 있다가 발기된 성기를 문지르면 기분이 이상하게 좋아지다가 결국 끈적한 액체가 분출된다는 걸 알게 된 건 중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중학생 때는 운동장에 친구들 몇 명과 둘러 모여 앉아, 친구 중 한 명이 어디선가 구해 온(분명 나는 아니었다. 믿어줘!) 콘돔의 포장을 뜯어보면서 그 미끈미끈한 감촉과 생소한 고무냄새에 난감해했다. 대체 이건 뭐야?

그 장면에까지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게 되는 순간 나의 자괴감은 더욱 커진다. 그러니까, 나는 남자 놈들이랑 쓰지도 못할 콘돔 뜯어보면서 깔깔대고 있을 때, 몽룡이란 놈은 이미 춘향이라는 절세 미녀(심지어 나이도 아직 십대에 불과한!)와 술까지 마셔대면서 질펀하게 놀아댔다는 것 아닌가! 21세기인 요즘에도 수많은 남자들이 성인이 되고도 제 짝을 찾지 못해, 혹은 여건이 되지 않아 사지 멀쩡한 몸을 갖고도 방구석에 틀어박혀 1.4기가바이트짜리 한낱 영상에 기대어 성욕을 해소하는데, 몽룡이 이 놈은 그 영상에서나 등장할 법한 온갖 체위와 대사들을 실제로 행하다니(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찾아보시라. 주변 사람들에겐 우리네 고전문학의 향과 흥에 취하고 싶다고 말하면 그만이니!). 참으로 무엄한 놈이로다 하면서 몽룡이를 혼쭐내기 보다는 우선 ‘나는 대체 왜 저러고 못 살았나’하는 질문이 먼저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게 궁금했다. 왜 우리는 그 나이에 섹스를 하지 못했으며, 섹스를 하더라도 숨어서 해야만 했었나. 알다시피 인간의 신체가 2차 성징을 시작하는 것은 대체로 10대 초중반이다. 그 시기부터는 성관계를 맺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가능해지며 성욕이라는 것 또한 생겨난다는 의미일 테다. 이를 증명하듯 대한민국의 평균 첫경험 나이는 10대 중후반이라고 한다. 한데,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녀본 경험으로는 그 당시의 성관계란 것은 음성적인 형태로 행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진’이라 불리는 친구들이 음침한 데 숨어 있는 모텔이나 여관 중 한 곳을 ‘뚫어서’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아니면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틈을 타 집에서, 그도 아니라면 늦은 시각 아파트 계단이나 놀이터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떠한 경우건 간에 성관계를 맺는 친구들은 자신들이 한 행위가 사회적으로건, 혹은 선생님이나 부모님한테건 그리 환영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었다. 그들의 성관계는 항상 발각될 경우 ‘불법’으로 낙인찍히거나 혹은 엄청난 불호령이 떨어질 위험을 수반했다. 근데… 대체 왜?

10대라는 존재가 성욕을 갖고 또 마음이 맞는 상대와 함께 성관계를 맺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데 사회학적으로, 경제학적으로, 혹은 윤리적으로 그들의 성관계를, 섹스를 막는 것은 대체 누구인가? 어찌하여 그들은 자신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음성적이고도 불법적인 경로로밖에 해결하지 못하는가?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음란물을 소지할 경우 아청법에 걸린다는 기사에 한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이 달아놓은 댓글이 내 마음을 울리는 바 있어, 그것을 인용하는 것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고딩이 고딩 보고 꼴리는 게 당연한 거지 ㅅㅂ!”

레드홀릭스 글쟁이 @이랍
'넌 그걸 좋아하니깐 나랑 그걸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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